Chemi-say
우리는 꿈꾸던 어른이 되었을까
2026/10/08
여러분은 어릴 적 꿈꾸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히며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향한 온전한 돌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지친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 줄 공감과 위로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어릴 적 꿈꾸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히며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향한 온전한 돌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지친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 줄 공감과 위로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기술기획팀 서정우 프로
‘난 커서 이런 어른이 될 거야.’
아마 우리 모두 어릴 적엔 반짝이는 눈으로 한 번쯤 이런 다짐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그 시절의 당찬 목소리는 점차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내던 다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건, 얼마 전 출근길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듣게 된 노래 한 곡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릴 적 꿈꾸던 어른이 되었는지, 적어도 어른다운 어른은 되었는지, 노래는 묻고 있었다. 그 질문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영상 아래에는 저마다 써 내려간 자신만의 답안지가 수없이 쌓여 있었다.

천 명의 사람에게는 천 가지의 사연이 있다고 했던가. 답안지의 내용은 참으로 다양했다.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 비록 어릴 적 그리던 모습은 아니어도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람 등 희망이 엿보이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스스로에게 낙제점을 매긴 이들이 훨씬 많이 보였다. 노래를 듣고 나니 잊고 있던 옛 꿈이 떠올라 지금의 내 모습이 몹시 실망스럽다는 고백부터, 나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조금도 어른스럽지 못한 스스로가 서글프다는 자조 섞인 글까지. 당시 꿈꾸던 모습에 비해 현재의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고개를 떨군 답안지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과연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씁쓸하게도 어린 시절 내가 어떤 어른을 꿈꿨는지조차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의 끝자락을 더듬어 간신히 찾아낸 꿈 하나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소박했던 꿈에 비추어 보아도 나 또한 내 답안지에 선뜻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꿈에 비추어 지금의 자신에게 이토록 가혹한 점수를 주는 걸까? 저마다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우리는 종종 ‘사후 확신 편향’의 덫에 빠지곤 한다. 이미 모든 결과를 알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제한된 정보 속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잣대로는 ‘당연히 피할 수 있었던 실수’처럼 착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요즘 드라마나 소설에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물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보편적인 후회와 미련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원하던 대학 입시에 실패했던 나, 현실적인 이유로 하고 싶던 일을 접어야 했던 나,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더 잘하지 못했던 나, 혹은 그때 그 투자 기회를 놓쳤던 나까지. 우리는 이런 크고 작은 후회에 붙잡혀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정면으로 바라볼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란 결국 결과를 다 알고 난 뒤에야 내릴 수 있는 불공평한 채점일 뿐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예기치 못한 불행과 행복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나를 향한 가혹한 채점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일이 아닐까. 과거 앞에 고개 숙인 우리가 현재를 다시 한번 담대하게 마주할 용기는 바로 그 너그러움에서 시작될 테니 말이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 머무르